“한 장의 사진이 역사를 바꾼다”
이 말은 아마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들을 본다면 공감할 수
있으리라 본다.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들은 그저 그렇고 그런 사진에 불과하지 않다. 이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기자들과
사진작가들은 많은 노력과 희생을 치러야 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전쟁터를 쫓아가서 팔과 다리를 잃기도 하고, 자기가 찍은 사진 때문에 테러와
암살 위협에 숨어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퓰리처상은 역사의 한 부분을 전달한 것만 아니라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울려 자발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퓰리처상은 1917년 미국의 신문왕 조셉 퓰리처(Joseph Pulizer)의 유언으로 만들어졌다.
조셉 퓰리처는 1849년 헝가리 곡물 중개상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1878년 이후 신문경영자가 된 퓰리처 세인트루이스에서
<포스트 디스패치>지를 성공시키고, 1883년에는 뉴욕의 <월드>지를 매입해 미국 최고의 신문으로 만들었다.
저널리즘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퓰리처상은 조셉 퓰리처가 사망한 1911년 그의 유언으로 미화 2백만 달러의 유산으로
제정되었다.이제부터 지금까지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들은 보도록 하겠다.
1940년대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전세계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전쟁으로 많은 곳들이 폐허가 되어버리고, 참여한 나라들은 경제적, 인적 손실을 갖게 되었다. 1944년 수상작인 프랭크
파일렌(Frank Filan)의 「타라와 섬」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참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마킨과 타라는 태평양의 섬들 중 적도 바로
아래의 길버트 제도에 속한다. 이 두 섬에 미군이 상륙해, 3일간의 파상 공격으로 두 섬의 일본 수비대가 전멸하였다. 이 파상 공격으로 인해
폐허로 변한 섬을 찍은 사진이 바로 「타라와 섬」이다. 이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전쟁의 참혹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며, 당시의 미국의 공격이
무차별적인 공격이었다는 사실을 생생히 볼 수 있다.
1950년대의 사진 중 시선을 가장 끄는 사진은 1958년 수상작인
윌리엄 C. 빌(Wiliam C. Beall)의「퍼레이드의 유혹에 끌려」이다. 두 살배기 아기가 보도에서 퍼레이드 속으로 걸어가는 것을 지켜
보고 있던 경찰이 아기를 다정하게 타이르는 장면이다.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사진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아기의 웃는
표정과 경찰이 아기에게 보내는 미소가 잘 살아있다.
1960년대와 70년대는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사진이 무척 많다. 그
중 1969년의 수상작인 애드워드 T. 애덤스의 「사이공식 처형」, 1972년 수상작인 데이비드 흄 케널리(Dave Hume Kennerly)의
「베트남 전쟁」, 그리고 1973년 수상작인 「베트남 전쟁」을 보면, 전쟁의 참상과 비극 그리고 아픔들을 알 수 있게 된다.
「사이공식 처형」은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간부가 사이공 정부군 해병대와 경찰에 체포되어 베트남 국가 경찰 장관 앞에
끌려간다. 국가 경찰 장관은 끌려온 남자가 앞에 서자마자 길 위에서 권총으로 쏴 죽여 버린다.
이 충격적인 처형 장면은
베트남 전쟁이 정의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던 미국인들의 생각을 바꿔버린다. 「전쟁 중에는 법과 인권은 없고 전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를
바꿔버린다」. 「오로지 총을 든 자가 심판자」 라는 생각을 들도록 만든다.
1972년 수상작인 「베트남 전쟁」은 미국군
병사가 북부 베트남 언덕 위에서 적이 잠복해 있는 방공호에 총을 들고 다가가는 장면을 찍은 것인데 전쟁의 황폐함과 고독함을 잘 표현했다.
1973년 수상작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의 공군기가 자국민에 네이팜탄을 떨어뜨려 폭탄의 폭발을 피해 도망가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은
사진으로 도망가는 아이들의 우는 표정과 공포의 표정이 잘 나타나있다.
이 사진은 「전쟁이 왜 죄 없는 아이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전쟁은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하고 순수한 아이들에게도 아픔과 슬픔을 만든다. 그리고 이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을
통해 「그들에게는 죄가 없다 단지 ‘전쟁’이라는 비극의 시대에 태어난 것이 죄라면 죄일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도록 한다.
1980년대 사진 중에서「기아」속의 인간을 모습을 보여 주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할만한 사진들이 있다. 1984년
수상작인 앤터니 수오(Anthony Suau)의 「에티오피아의 아이」와 1985년 수상작인 스텐 그로스펠드(Stan Grosfield)의
「에티오피아의 기아」이다. 사진 속에 아이들은 왜 저렇게 말라야만 했는가? 좋은 음식을 섭취하며 좋은 환경 속에서 자라야할 나이에 저 아이들은
왜 배고픔에 죽어가야 하는가? 배고픔을 모르고 자라고 있는 요즘 세대의 아이들은 그 사진들을 보면서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 봐야 한다.
1990년대 사진 중 우리를 번민과 갈등 속으로 빠지게 하는 사진이 있다. 1994년 수상작인 케빈 카터(Kevin
Carter)의 「수단의 굶주린 소녀」이다. 이 사진은 사진 작가가 수단의 식량 센터로 가는 도중에 찍었다. 식량 센터로 가다가 기운이 다해
엎드려 있는 소녀와 옆에서 이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독수리의 모습을 담았다.
이 사진은 퓰리처상을 수상했지만 많은
비판을 받았다. 비록 소녀를 구했지만 ‘촬영보다는 먼저 독수리에게서 소녀를 구해야만 했다’고 비판을 받았으며, 후에 이 사진기자를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도록 하게 한다.
우리라면 과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였을까? 사진을 포기하고 소녀를 구했을까? 아니면 사진을
찍고 나서 소녀를 구했을까?
이번 사진 전시회는 이제까지의 사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꿔버렸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냥 한
장의 종이에 불과한 것이 사진기자들로 하여금 생명을 걸게 만들고 역사를 바꾸다니….
전 세계인들에게 진실을 전해 세계인들의
마음을 울려 행동하게 만들어 세계 역사를 바꾼 사진들. 전시회장을 처음 들어갔을 때 본 문구 “한 장의 사진이 역사를 바꾼다”라는 말은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는 의문점도 있었다. 과연 죽을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러 사직을 찍었다는 사진기자들의 말들. 과연 그들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사진을 찍은 것인가? 아니면 무엇을 바라고, 이런 퓰리처상을
바라고 사진을 찍은 것일까?
하지만 역사를 바꿀만한 사진을 찍기 위해 지금도 어디선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기자들에게
격려와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99년도 퓰리처상 수상자 「클린턴 섹스 스캔들」의 강현원에 그치지 않고 다가오는 21세기에도 수많은 한국인
수상자가 생겨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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