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밝았다
영숙은 지친듯 좀 있다 서울도 가야하는데 소요산 자재암은 가지 말자길래 나는 자전거를 타고 덕계리까지 1시간 20분동안 천천히 저으며 밀린 묵주기도에 기댔다. 형과 형수가 점심 같이 먹고 병원으로가자며 혜화역 1번 출구에서 만나 맛있는 중국식 냉면집에서 나는 해물짜장을 먹으며 추억을 먹었다.
진단서에 날짜 넣어 재발급하려고 이 부서에서 저 부서로 돌고 돌았는데 그것은 의사가 재작성해야하는 문제라 ...
누나도 오고 서림이도 오고 , 환자 한 명에 보호자가 5명이었다. 내 뒤에 환자가 기차시간 때문에 초조해 하길래 순서를 양보했다. 혹시 작은 양보가 나에게 나비효과로 다가올까 싶었지만. 예상 외로 가고 말았다. 형과 누나와 들어갔다. 서림이는 양보했다.
어두운 표정의 최선미 교수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그럼 수술은 안되는 거네요" "수술은 의미가 없습니다"
"머리 MRI는 어떤가요?" "머리로는 전이 되지않았습니다"
"치료를 하면 얼마나 오랜 기간이 될까요?" "사람마다 달라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최선미는 호흡기 쪽의 암을 발견하는 것이 전문이지 치료하는 의사의 파트는 아니댜
방사선 종양학과 김학재교수와 종양내과 김동완 교수에게 나를 전과 시켰다
김범석 교수는 곧 연수를 떠나서 김동완 교수로 결정된 것이다
내가 진료실을 나가면서 영숙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아마 겉잡을 수 없이 울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숙의 눈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덩달아 나의 눈이 빨개졌다. 영숙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안아줬다. 하지만 내 어깨가 더 들썩였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서로 울었다. "어쩌겠니, 모두 다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잘 치료 받아야지." 내 볼에 흐르는 눈물을 영숙이 손수건으로 닦아줬다. 영숙도 울고 나도 울고 ...... 하고 싶은 긴 문장이 있었는데 울음이 말을 막았다. 그래서 짧게 한마디 "미안해" 영숙은 " 당신이 미안해 할게 뭐 있어, 당신 잘못도 아닌데" 하지만 나는 미안했다. 말썽꾸러기 남편이 또 일을 저질른 것 아닌가? 나야 내 문제니까 나 혼자 슬프든 아파하든 하면 되지만 영숙은 어쩌나. 삼시 세끼에 건강식을 해대며 힘들것이고 힘들다고 내색할 수도 없을 것이고 순간 순간 떠오르는 투병 간호의 무게가 또 얼마나 인생을 무겁게 만들까? 자신의 삶도 접고 나의 치료 프로그램에 모든 일을 맞춰야하고
다들 헤어지고 서림이 차를 타고 영숙과 내려오며 "내 걱정만 하지말고, 친구들도 만나고 술도 먹고 재미난 일들도 만들어" "당신이 아픈데 술 맛이 나고, 친구들 만나고 싶은 생각이 나겠냐? 서림이 서라가 아팠을 때는 가슴이 아팠는데 남편이 아프니까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막막함이야"
중복이기도 했지만 윤미가 저녁을 산다하여 흥부네산약초에서 만났다. 형님 내외와 처형 그리고 윤미 내외 서림이 까지... 서림이는 성당에서 세례 예행연습이 있어 자리를 일찍 떴다. 우리도 저녁을 마치고 서림이가 있는 성당에 가서 뒤에 앉아 지켜보았다. 다 마치고 나의 건강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의 악수로 또 위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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