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ffiti

산이 좋아졌습니다 2002

Graffiti 2006. 1. 8. 16:30

어렸을 적에 등산이라함은
길도 없는 산을 헤쳐 정상에 오른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잊혀져버린 친구와 토요일이면 작전을 세웠습니다
쌀, 석유버너, 칼, 도마, 고추장, 그날의 메인 메뉴 등등
아침 점심 두끼 메뉴를 위해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침은 산 초입에서 해먹고 설겆이를 할라치면
그제사 다른 등산객들이 하나 둘 올라갈 정도로 우리는 일찍 만났습니다

산을 갔으면 길을 따라 조용히 등산을 해야했지만
우리의 무모함은 남이 가지않은 길로 가는 마치 탐험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금새 지치고 더 이상 올라가고 싶지 않은 곳이
곧 우리의 점심 식사 장소였습니다

물이야 물통에 있으니 식탁을 꾸미는 장소는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등산이 목적이 아닌 오로지 야외에서 밥을 지어먹기 위해
집을 나선 셈이고 목적지가 산이었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맛있는 점심이 끝난 우리에겐 정상을 오르는 것이 무의미했습니다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우리끼리 해먹는 밥맛이었으니까요
누워서 하늘과 나무를 바라보며 그 나이 애들에게 어울리는 잡담으로
해가 지기를 기다립니다

식성이 변하듯 좋아하는 운동이 바뀌고 있습니다
스쿼시가 좋아 3년을 했고 조깅이 좋아 제일 비싼 신발을 샀습니다
지금은 산이 좋아졌습니다

염불에는 관심없고 제밥에만 눈이 멀어
새로나온 방수 등산화, 겨울 대비 스팻츠, 멋있는 지팡이가 갖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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