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 5;45분 나를 배웅하러 일찍 일어난 가족들과 허깅을 나누고 집을 나서며
아란이의 블로그에서 봤던 최근 너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두천의 새벽 공기가 영하 8도라 그런가 안구에 습기가 차오른다.
공항 가는 길이 즐겁지 않구나
너가 한국을 떠나던 날 공항에 나오지 말라 했지만 난 열심히 차를 몰고 김포공항 해외 줄국장에 갔었다
둘이 앉아 이야기하는 내내 어떤 전율이 몸에 퍼져 나갔다
이제 너를 보내면 언제나 볼까 암담도 했었는데 벌써 10년이 지나 이젠 너를 만나러 인천공항으로 간다
너를 만나러 가는 길과 누군가를 두고 떠난다는 것이 묘한 기분이구나
비행기가 움직이며 창가에 앉은 내가 설레기 시작한 것은 해외여행이 아니라
13시간 정도 지나면 너를 만날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다려라.
지구의 자전 반대 방향으로 가니 생각보다 빨리 도착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 혼자라도 떠나게 해준 영숙에게 고맙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높은 하늘에서 경관이 제일 좋을때쯤 치킨 라이스에 와인까지.
배고파서 먹는 식사가 아니라 느긋하게 구름위에서 즐기는 식사는 역시 일품이다
아래로 보이는 바다 위에는 구름의 그림자가 일본의 어느 섬만큼 크게 보인다
영상 7도의 도쿄는 동두천과 다를바없어 시간도 기온도 같다
하지만 자동 로밍된 스마트폰이 켜지자 일본말로 인사가 나오는 것과 여전히 좌측통행인것만 다르고
잠시 쉬었다가 나리타 공항을 출발하려는 엔진 소리가 갑자기 내 마음을 출렁이게 한다.
앞으로 8시간 50분 후에는 십년동안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했던 너가 있는 미국 땅에 도착할것이다.
집사람은 울보인 내게 울지말고 잘있다 오라하고
너가 나를 만나주지 않아도 낙담하지 말고 그렇다고 원망도 말고 평생 화해를 위해 노력하자며 나를 위로했었단다.
말그대로 끝도 보이지않는 말로만 듣던 태평양을 건너고 있다.
가미가제의 진주만 공격 길을 따라 날고있는 걸까?
우주에 행성이 어린것 젊은 것 늙은 별 등등 있듯이
태평양에 위에 떠있는 구름도 1만 피트에서 내려다 보면 구름이 막 생기려고 한 놈 생성이 되었다가 흐트러지는 놈
제대로 이쁘고 두툼하게 생긴 놈 각양각색이다.
지금은 해를 등지고 동으로 동으로 날아가고 있다.
이 비행기는 머지않아 어둠을 만날것이다.
해가 지는 반대편으로 시속 800키로 이상으로 달리다보니 셕양에서 밤이 순식간이다.
태평양 상공에서 날이 저물었다.
한국은 초저녁인데 미국에 도착하면 아침이니 지금부터 자둬야 하지만.
너가 알듯 나는 아무데서나 쉽게 잠들지 못하는 성격인데다 비록 어제밤을 설쳤어도 네 생각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잠이 오지않아 영화 두 편 그리고 타큐멘터리 한 편까지 보고
서쪽인 유럽으로 사라진 해를 동쪽으로 날아가 만나려고 쉬지않고 KE001편은 고속비행하고있다.
종종 보는 바다도 볼 때마다 다르듯 어쩌다 보는 하늘에서의 구름은 변화무쌍이다.
햔국시간으로 밤 열시 태평양의 깜깜한 하늘엔 어렸을적 시골 고향에서나 올려다 보이던 초롱하고 영롱한 별빛들이
비행기 바로 날개 위에서 머리 위에서 빛난다.
지구가 동그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늘에서 바라본 LA는 우리나라에서 넓다는 호남평야의 10배 이상되는 규모랄까
끝없는 평지와 정방향으로 구획된 엄청 넓은 도시다.
다운타운을 제외한 곳은 건물들이 모두 낮아 아주 색다른 도시 분위기를 갖고있다
한국 시간으로 밤 12시에 천사의 도시 LA에 도착했다.
하지만 공항은 작아 다른 비행기에 안닿게 아슬아슬 곡예 운전을 한다
인천 공항이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한지, 아시아의 허브 공항이란 찬사가 거짓이 아님을 LAX Tom Bradley 공항이 알려주었다
출입국 심사가 시작되고 한국인의 아메리칸드림이 여기서 부터 시작되고 거절되었음을 떠올려 보았다
낯선 미국 땅과 갑자기 바뀌어진 날씨가 그리고 너가 이고있는 하늘과 숨쉬는 공기를 내가 같이 느끼고 있다는 것에
내 심장은 점점 빨리 뛰었다
아침 8시쯤 멕시칸 흑인 택시 기사는 네비에 호텔의 주소를 입력하고 달렸다
LA와 Torrance 사이의 프리웨이는 교통사고로 차량들이 서행하고 있었다
한시간도 채 되지않아 도착한 호텔은 체크인 하기엔 이른 시간이라 주위의 한적한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네게 전화를 걸었다
헬로우 하고 목소리가 들려오고 난 너의 목소리가 낯설어 인관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얼쭈 10년 만의 내 목소리를 넌 한번에 알아듣고는 영수냐? 오랜만이다, 어쩐일이냐는 물음에
너 만나러 왔지-뭐라고?-너 만나러 왔다고-무슨 소리를 하는거야-너가 보고싶어서 Torrance 에 왔다니까-진짜?-그래-그럼 전화를 하고 와야지-뭘 전화를 하고 와-전화를 하고 와야지, 여기가 어디라고 말도 없이 오냐-너가 안만나줄까봐 그냥왔어-그럴리가 있냐? 그런데 내가 Torrance 에 사는지 어찌알고-아란이 한테 물어봤어, 아빠한테는 비밀로 하라고 했지-그럼 너 지금 어디야-호텔 옆이야-호텔이 어딨는데-너희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어, Sepulveda 와 Cranshaw 가 만나는 곳이야-나 산타모니카에 왔는데 너 거기 꼼짝말고 있어, 나 금방 일 끝낼테니까, 내가 곧 갈께....
난 너가 "만날 필요없어 너 잊은지 오래다"라고 말한다면 어찌해야하나 걱정했는데
너는 아직 나를 잊지않고 있었다.
내가 너를 잊지않은 것처럼.
아란이는 낯선 타국에서 아빠가 성격이 좀 걍팍해졌다고 했지만 난 그런 느낌을 네게서 받지는 않았다
바로 옆에 작은 Mall 에서 콜라를 한 잔 사들고 야외 탁자에 앉아
캘리포니아의 햇볓과 멀지않은 곳에서 바람결에 날아오는 태평양의 습기 먹은 바람이 여행의 피곤을 달래준다
그곳 주변의 상가에도 한국 사람이 경영하는 곳인지 간판이 한글이고
일본 사람이 운영하는 액자 전문점이 있어 들여다 봤더니 3류급 상점이었다
이 가게 저 가게 특색도 없어 보이고 구경할 만한 것도 없어 난 사실 흥미를 잃었다
잠시후 선미씨 한테 전화가 오고 너처럼 같은 질문과 대답을 반복했다
잠시후 미란이를 보낼테니 꼼짝말고 거기 있으라는 것도 너와 같다
첫 대면의 어색함을 어떻게 해야하지? 그래도 전화라도 반갑게 받아주니 다행이었다
한시간 정도 지났을까, 낯선 미국 땅이 용산 사우스 포스트에 와있는것 처럼 느낄때 쯤
차가 한대 들어오는데 너였다
눈이 마주치고 잠시 어색한 눈빛을 주고받고 주차를 하는 너에게 다가갔다
운전석에서 내리는 너와 말없이 악수를 하며 어색한 웃음을 짓고 허깅을 하는데 감정이 복받쳐 우리의 어깨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말도 잊은채 한참동안 포옹을 하고선 어깨를 들썩이며 애써 울음을 참으려 하지만 우린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서로 미안하다며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연락이라도 하고오지 여기가 어디라고 불쑥왔느냐며 우리는 눈물 반 웃음 반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지금 생각해보니 만약에 미국 사람이 우리를 봤다면 여지없이 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껴안고 울고 웃고 했으니 말이다
차를 타고 너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기어 박스에 얹어진 너의 손을 덥석 잡고는 다시 반가움을 표현 하는데 울음끝이 아직 남아 있어 둘은 또 울었다.
말과 울음이 섞여 그만 둘은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집에 도착하니 구글에서 조회한 그 주소의 집이었다.
미란이와 강아지 쵸코가 반갑게 맞아주고 아란이와 미란이가 나의 미국 방문을 알고있으면서도
엄마 아빠한테 미리 알려주지않은 것에 대해 인관이가 살짝 눈을 흘기며 미란이를 책망한다
집에서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다 점심을 먹으러 순대국집으로 갔다
먹는 순간만 빼고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했다
팔로스 버디스에서 벅스 커피를 마시며 태평양을 바라보면서도 이야기하고
이동 중에도 계속 이야기 하고 그렇다고 10년의 공백이 메워질리 없었다
예전에 살던 집이 어디라고 알려주는데 경관이 그림같았다
부촌인데다가 박세리가 우승컵을 잡았던 골프장 근처였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는 너의 말에 나는 할말이 없었다.
선미씨가 퇴근하는 8시까지 시내 이것 저곳을 둘러보고 선미씨를 픽업해서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선미씨와 마주앉아 식사를 하는 내내 너무 미안하고 반가워 계속 마음이 짠하고 있었다
나의 귀국 날짜가 촉박한 이유를 묻는 찰리(인관이와 같이 살고 있는 후배)에게 너는 자기만 보러 왔다며 자랑겸 말하는데
선미씨와 미란이 그리고 너와 같이 식사를 한다는 자체가 너무 감격해 그만 또 눈물이 왈칵 쏟아져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눈물이 헤퍼진건지 나이가 들어 마음이 약해진건지 정말 당황스럽다
예약한 호텔은 환불이 되든 안되든 취소 신청하고 너네 집에서 자야지 어디가서 자냐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도 말란다.
집에 도착해서는 찰리가 먹다 남은 배갈을 마시며 미국의 첫날밤은 깊어가고 있엇다
비행기에서 한 시간 밖에 못잤지만 간밤에 6시간만 자고 벌떡 일어났다
금요일 아침 너는 출근을 준비하는지 물소리가 들린다.
잠시후에 나가보니 차도 안보인다.
출근해서 급한 것만 처리하고 일찍 들어오겠다고 어제 이야기 했었다.
아침에 선미씨도 출근한다면 집에 우두커니 있느니 구경이나 한다고 나왔다
Sepulveda 대로를 따라 드뭄드문 박혀있는 상점들을 기웃거리며 애초에 숙박할 Torrance travelodge까지 걸어왔다.
근처에 있는 Willson Park에서 한가로이 사색에 잠겨있는데
내 로밍폰은 전화비가 많이 나온다며 선미씨가 자기 핸드폰을 주러 여기까지 왔다.
한국은 지금 한 밤중이라 그런지 좀 몽롱하다.
공원에서 나와 Sepulveda를 따라 동으로 동으로 걸어 Hathorn BlVd까지 걸으며 Springwood를 지났다.
지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건물들이 나즈막해 높은 건물을 만나기 어렵다.
Studio는 두군데나 들러 장비도 보고 사진 가격대도 검토해봤지만 내 스튜디오 가격과 큰 차이는 없었다.
4시간 동안 돌아다닌 셈이다.
어제도 오늘도 일을 일찍 끝낸 너가 나를 데리러왔다.
한국에는 없고 미국에만 있다는 IN-N-OUT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색다른 햄버거세트를 먹고
LA 시내 관광도 할겸 너는 치과 치료도 할겸 한인타운으로 향했다
80년대의 보산동을 연상하는 외관과 한글, 영어의 조화가 눈에 익는다
한국에서 매일 보는 미국 사람과 매일 만지는 달러와 매일 하는 영어까지
이곳이 미국인지 한국인지 혼돈이 될 정도로 감흥이 없을 정도로 만만하게 보였다
저녁은 순두부 집에서 해결하고 그곳에서 우연히 너의 큰 동서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귀가 길에 와인을 사서 끝없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으며 미국의 둘째 날 밤을 보냈다
올해 들어 일요일을 제외하고 단 하루도 쉬지도 않은 너가
내가 왔다고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토요일은 쉰다고 회사에 이야기 했다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목요일도 금요일도 오전 근무만 해서 손해가 났을 텐데 토요일까지 제끼며 나를 환대했다
Morongo 아울렛과 카지노늘 내게 보여주겠다며 길을 나섰다
마침 서라가 Gap 후드 티를 사오라기에 두 벌을 골랐는데 너가 그만 돈을 냈다
카지노에서 난 재미 삼아 $40을 잃었는데 너는 Black Jack으로 $700 정도 땄다
10번 오면 두 세번 딴다는 날이 오늘이라 다행이었다
Torrance로 돌아와 저녁 식사엔 회와 고기를 먹을수 있는 식당으로 갔는데
회는 한국과 달라 물컹이고 고기는 그냥 그랬다
너의 친구 강사장(한국에 있을 때도 만났었다) 가족과 너의 가족 그리고 찰리와 같이 먹었는데
강사장이 가져온 보드카에 취하고 반갑고 좋은 감정에 취하고....
마지막 밤을 그렇게 보내면 안되는 건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야 했는데
그만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몇 년 만에 정신을 놓도록 먹어 봤는지 기억도 가물한데 아쉬운 밤을 그렇게 보내 안타깝다
집에 돌아와서도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울었다는데 기억이 없어 미안하고 후회된다
오랜만에 너를 만나 술주정을 한 셈이니 미안하다
아침에 일찍 눈을 떴지만 술 때문에 몸은 무거웠다
너희 부부는 일찍 일어나 담소를 나누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
일본은 쓰나미와 방사능으로 난리가 났다는데 나는 도쿄를 거쳐 한국을 향해 가야한다
캘리포니아는 오늘부터 섬머타임이 시작되어 한 시간 일찍 서둘러야 했다
너와 선미씨 그리고 일찍 일어난 미란이 까지 우리는 공항으로 향앴다
선미씨가 가는 도중에 자기네 식구를 잊지 않고 미국까지 찾아와줘서 고마워했다
난 내년 2월에 우리 가족 모두 데리고 다시 오겠다 했고
너는 내년에 우리가 오면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낼테니 같이 관광이나 가자고 했다
난 아란이도 못보고 미란이도 못보고 가게될까봐 세배돈이라 생각하고 탁자 위에 돈을 놓고 나왔다
미란에게 그동안 삼촌이 못준 세배돈이다 생각하고 언니와 나눠 갖으라 했다
공항에서 보딩패스를 받고 남은 시간동안 내내 또 이야기르 나누었다
이제 가면 일년은 지나야 하니 두 눈 가득 너희 가족을 담았다
이제 가야할 시간
미란이와 악수를 하고 선미씨와 포옹하는데 눈물이 쏟아질까봐 조심했다
너와 악수를 하며 건강 조심하고 열심히 살자는 말을 남기고 아쉬움을 안은채 돌아섰다
동두천 집에 도착해서 네게 전화를 하니 미국 시간으로 다음날 아침 6시였다
엊그제 프로스펙스 형님네와 낚지볶음에 소주 한잔 했는데
처남댁은 너를 만나고 온 것에, 나의 열정에 감탄하시더라
그정도의 친구가 있다면 후외없는 인생을 산것 아니냐며 우리를 띄워주셔서 그날 소주값은 내가 냈다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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