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관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서 선뜻 너의 이름이 입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구나
주위의 식구들이나 너와 나의 관계를 알고 있는 우리의 친구들 조차도
내 앞에서 너의 이름을 꺼낼 때는 조심스러워 한단다
아직도 소원한 관계로 있는데다가 너는 잘 있는지 걱정도 되고 연락은 잘 닿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너무 갑작스런 변화가 우리 사이에 가로막고 있어 눈치를 본다고나 할까
그럴때 마다 그 놈의 돈 때문에 이게 뭔가 정말 울컥한다
그 당시 너무 힘들었어도 너보다는 내가 나을꺼란 생각을 안한건 아니지만
내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뭉게고 너를 도와줄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한이 된다
그 당시 나도 그만큼 절박했었다는 것을 너가 헤아려준다면 더이상 바랄게 없다
부부가 살다 부부싸움 끝에 격해져 마음에 담고 있던 밑바닥 감정까지 모조리 꺼내어 말로 뱉는 순간
갈라서게 되는건데 우리가 그랬던거 같다
둘이서 누군가를 비난할때는 세상에서 가장 심한 욕을 해도 우리둘은 서로 상대에게 새끼란 말도 안했고
내 기억엔 짜식이란 말도 해본적도 들어본적도 없었을 거야
그런데 너와 내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는 욕은 안했어도 내용이 도를 넘었었다
그것이 진실이건 아니건 서로의 믿음을 깨기에 충분했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2000년 이전으로 되돌릴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싶다
거리라도 가깝다면 자주 보면서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뭘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만
내가 무조건 미안하다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
너를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쭈볏거리다가 아까운 시간만 흘러갈까봐
이렇게 글로써 내 간절한 마음을 먼저 전한다
너를 만나게나 될지 나를 안만나 줄지 몰라 걱정되어 더더욱 이렇게 글로 남긴다
너가 미국에 가기 직전에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겠니
또 미국에 도착해서는 얼마나 막막했겠니
체류 문제로 사업 문제로 그리고 부족한 경제력과 나와의 문제까지 겹쳐져 얼마나 고독했겠니
미안하다
잘못했다
너가 떠나고 허송세월 보낸 지난 10년을 어찌 복구할 수 있겠냐마는
지금이라도 이런 노력을 안하면 또 10년이 훅 지나갈까봐 용기를 내어 힘들게 미국을 간다
혹시 내 마음이 변해 미국 가는 것을 포기할 까봐
작년 말에 이미 티케팅을 하고 마음 졸여가며 너와의 재회를 손꼽아 기다렸다
너의 전화번호도 바뀌고 주소도 바뀌어버려 연락이 닿지않지만 무조건 저질렀다
친구를 만나러 먼 길을 떠나는 것도 처음이고
혼자서 외국을 나가는 것도 처음인데 오로지 너를 만나기 위해서다
누가 나를 부른들 그 멀리까지 가겠니
너가 아니고서야 내가 어찌 태평양을 건널 수 있겠냐
내게 있어 너는 그런 존재감이었다 지금까지도
성당에 열심히 다니던 시절 친구를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화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지
하지만 꿈속에서는 그렇지 못했단다
꿈에서 너를 만나면 나는 너에게 갖은 욕을 다하면서 비난하고 심지어 폭행까지 한다만
너는 항상 그대로 나를 받아주었다
꿈에 내가 미국을 몇 번 다녀왔고 너가 한국에 여러차례 왔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며 그런 꿈을 꾼 내가 미웠다 그리고 네게 미안했다
그리고 영숙에게 이런 꿈을 꾸었다며 서로 마주보며 고민했다
근 10년 동안 너를 꿈에서 만나면 싸우곤 했는데 작년 후반부터 내 마음이 변했는지 싸우지는 않더구나
그래서 이제 화해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무조건 만나 내 마음을 전하자
평생 미움과 마음의 빚으로 간직하느니 행동으로 옮겨보자고...
나의 정성과 너와 나의 가족들의 바램에 기대어 용기를 내어보자
40년의 만남에서 10년을 빼고라도 30년의 우정이 이렇게 헌신짝이 되어서야 말도 안되지
살면 얼마나 산다고 미움을 간직한채 외면한채 살수는 없지 않겠냐
정 인관 ! 인관아!
미안하다
잘못했다
십대에 만나 십미터 이상 떨어져 본적이 없고
이십대엔 이심전심 이틀이 멀다하고 만나거나 전화했다
삼십대엔 삼척동자도 삼신할매도 알았다, 둘이 죽고 못사는 사이란 것을
사십대엔 사생결단 심정으로 이별하고 꿈속에서도 싸웠지만
오십대엔 오란말없어도 오만구천마일을 날아 Torrance로 너를 만나러 간다
중학교 시절 등산과 캠핑을 네게 배웠고
봄이면 안암동 뒷 산에서 아카시아 나무가지를 잡고 타잔 놀이를 했지
여름이면 태릉선수촌 수영장을 다니며 헤엄을 쳤고
얼굴이 이뻤던 롤러 스케이트장 여사장을 보러는 얼마나 자주 갔었냐
겨울이면 너를 따라 스케이트를 배우고 얼음을 지치러 금성 스케이트장을 일주일이 멀다고 다녔지
커서는 운전연수를 내게 해주었고
스키까지 내게 가르쳐 주었다
골프를 배워야할 시점에 내가 시간 내기가 힘들지 않았다면 그것 마저도 네게 배울 정도로
넌 내게 맏형같은 존재였던것 같다
내가 네게 알려준 것이라곤 기타 치고 노래하는 것 정도랄까
너는 청출어람이라고 노래방이 생긴 이후엔 나보다 노래를 더 잘하더라
너와 내가 같이 떠났던 숱한 여행들
하물며 넌 신혼여행마저도 연기하고
며칠 후에 있는 나의 결혼 날에 맞춰 신혼여행을 같이 떠나주던 의리파였잖아
너와 내가 엎드려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나누었던 젊은 날의 고민들과 이야기들은 어떠했냐
힘들 때 서로가 가장 먼저 달려와 주었고
기쁠 때 서로가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었잖니
너가 상도동에 살던 때 보슬비는 내리고 밤 12시가 되어도 연락두절이라며 선미씨한테 전화왔을 때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그 당시엔 자가용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
오토바이를 빌려타고 동두천에서 빗속을 뚫고 상도동까지 갔었지
내가 홍수로 집이 다 물에 잠기고 수해 복구에 여념이 없던 때
시계가 없어 불편한 내게 선뜻 내어준 네 시계의 값어치를 나중에 미군들이 알아보더라
그 시계를 지금까지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너가 떠나며 맡긴 양주는 내가 지금도 갖고 있지
그 술은 너와 내가 마주할 때 먹기위해 아껴두고 있단다
내가 군대있을 때
내가 교통사고 났을 때
우리가 어디에 있었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였다
내가 지금까지도 너를 잊지 않고자하는 이유가 이것 말고도 너무 너무 많다
말 그대로 소설을 한 권 쓸 분량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마음 상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던지 간에 묻어 버리자
서로가 마음에 남은 앙금을 털어내보자
세상에 태어나 너같은 친구 하나 있어 후회없는 삶이라 자처했는데
내게 이런 친구가 있다고 자랑도 했고 행복했는대
그런데 이게 뭐냐
내가 너에 비해 소심하고 욕심도 많고 이기적인 면이 있다는 것은 너도 알잖니
그럼 마음 넓은 너가 이해좀 해주지 이게 뭐냐
내가 그런 놈인지 너가 몰랐던거 아니잖아
너가 나를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냐
물론 내가 너를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겠냐
우리는 서로의 장단점을 다 꿰고 있잖냐
서로를 감싸줄줄 알아 친구 아니었냐
인관아
미안하다
잘못했다
배포 큰 너가 이젠 마음을 열 차례다
매년 너의 결혼 기념일 3월 21일과 음력 6월 5일 너의 생일
그리고 음력 6월 19일 선미씨 생일 날엔 내 마음이 항상 허전하고 짠하단다
항상 같이 했고 축하했었는데 말이다
기억나지? 언젠가 결혼기념일에 너가 여행같이 가자며 딸래미들 데리고 남쪽으로 떠났던 것
너가 돈 다 썼잖아
남해 보리암으로 해서 부산 해운대까지 특급호텔비에 식대까지 모든 경비를 너가 다 냈지
우리 가족더러 그냥 즐기기만 하라던 그런 너와 내가 아니냐
인관아 마음풀자
미국에서의 녹녹치 못한 너의 생활이 평일엔 늦게 끝나고 금요일 토요일은 일찍 들어오고
일요일엔 교회를 간다고 아란이가 일러주더라
아란이와 미란이의 자라는 것도 못보고 가끔 인터넷으로 인사만 해왔는데
아이들에게도 미안하고 선미씨에게도 미안하다
제일 믿었을 삼촌이자 남편의 친구인 나와 오래도록 소식이 끊어져 야속하게 생각할거야
원망도 많이 했을거야
다 나의 잘못이다
다시 그 예전의 위치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마
그것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게을리 않고 노력하마
너의 친구 영수가 나의 친구 인관에게 이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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