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

춘화 현상(Vernalization / 春花現象)

Graffiti 2023. 5. 29. 15:01

<김명열칼럼> 춘화 현상(Vernalization / 春花現象)

춘화현상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추위에 잘 견디는 작물들의 대부분은 어느정도의 낮은 온도에 노출되어야 생육상 전환이 일어난다. 이와 같이 저온에 감응하여 꽃눈이 분화하고 꽃이 피는 현상을 춘화현상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초빙교수로 살다가 귀국한 세계적인 정신의학계 교수에게 한국인의 이미지가 어떠냐고 묻자, 한국인은 너무 친절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판단하면 큰 오해다. 권력이 있거나 유명한 사람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지만 자기보다 약하거나 힘이 없는 서민에게는 거만하기 짝이 없어 놀랄 때가 많다. 특히 식당 종업원에게는 마구잡이로 무례하게 대해 같이 간 사람이 무안하고 불쾌할 정도다.

잘 나가는 엘리트일수록 이 같은 이중인격자가 많다. 잘 알지 못하는 사이이거나 VIP인 경우는 난감하다.

한국에서 엘리트 계층에 속한다면 배운 사람이다. 배운 사람일수록 겸손해야 하는데 오히려 거만을 떤다.

지식은 많은데 지혜롭지가 못하다. 말은 유식한데 행동은 무식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준법정신이 엉망이다. 힘 있는 사람부터 법을 안 지키니 부정부패가 만연할 수 밖에 없다.

대법관으로 임명된 인사가 청문회에서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를 인정할 정도이니, 정부요직에 있는 다른 인사들이야말로 말해서 무엇 하랴. 한국 엘리트들의 또 다른 모순은 자기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점이다. 회사에서도 뭐가 잘못되면 전부 윗사람이나 아랫사람 탓이고 자기 반성은 조금도 없다. 세상 모두가 남의 탓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너무 네거티브 하다. 사람들이 모여 앉으면 정치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데, 완전히 흑백논리로 평한다.

호남친구들을 만나면 박정희, 박근혜를 싸잡아 혹평하고 욕하고 하는 것, 그걸 듣다가 시간 다 가고……. 경상도 친구들과 만나면 김대중과 문재인을 씹어댄다. 한국에는 존경받는 대통령이 한사람도 없다. 모두가 이래서 죽일 놈이고 저래서 나쁜 놈이다. 국민들의 소득은 3만달러 이상인데 국민의식은 500달러 수준이다.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곧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벼락부자의 단점은 무엇인가? 그저 남에게 내가 이만큼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성공의 의미가 너무 좁다. 돈 있고 잘 사는데도 자기보다 더 잘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항상 배가 아프고 뭔가 불만족이다. 춘화현상(春花現象)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호주 시드니에 사는 교민이 고국을 다녀가는 길에 개나리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자기집 앞마당에 옮겨 심었다. 이듬해 봄이 되었다. 맑은 공기와 좋은 햇볕덕분에 가지와 잎은 한국에서보다 더 무성했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첫해라서 그런가보다 여겼지만 2년째도 3년째도 꽃은 피지를 않았다. 그리고 비로써 알게 되었다. 한국처럼 혹한의 겨울이 없는 호주(오스트렐리아) 에서는 개나리꽃이 아예 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온을 거쳐야만 꽃이 피는 것을 전문용어로 춘화현상(Vernalization)이라고 하는데, 철쭉, 개나리, 진달래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우리들의 인생도 마치 춘화현상 같다. 눈부신 인생의 꽃들은 혹한을 거친 뒤에야 피는 법이다. 그런가 하면 봄에 파종하는 봄보리에 비해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나는 가을 보리의 경우 수확이 훨씬 더 많을 뿐 아니라 맛도 더 좋다.

인생의 열매는 마치 가을보리와 같아 겨울을 거치면서 더욱 풍성하고 견실해진다. 마찬가지로 고난을 많이 이기고 헤쳐 나온 사람일수록 강인함과 향기로운 맛이 더욱 깊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젊은이들이 짊어지고 겪어야 할 춘화현상 이라면 감내해야 할 세대들이 갑갑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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