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jmO-TL3m83o OBS 다큐 만남 / 동두천 보산동 현대사진관 황영수
보산동을 잊은 그대에게
2022. 12. 04 (일) 저녁 6시 30분, 본방송!
연출 박철현 글•구성 소현진
촬영 장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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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다큐 만남>, 그 마흔일곱 번째 이야기는
동두천시 보산동 외국인 관광특구 이야기다.
1951년, 한국전쟁 이후 국가안보지역으로
2만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미군이 주둔했던 동두천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던 보산동은
클럽, 양복점, 잡화점, 사진관, 식당 등
미군을 상대로 한 점포들이 들어서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1967년 보산동 지역 클럽이 일년 간 벌어들인 외화가
약 40만 달러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이곳은,
미군 클럽을 통해 대중음악이 유입됐고
미국의 최신 패션과 전자제품 등
새로운 문화가 한국에 전파되는 첫 관문이었다.
2004년 이라크 파병,
미군 기지 평택 이전 등의 미군 기지가 대폭 축소되면서
번화했던 예전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군사지역으로 개발의 바람에서 빗겨나면서
거리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보산동이 옛 사진 속 그 거리와
사진에 담긴 이야기들을 따라 보산동 거리를 걸어본다.
보산동의 어제를 기억하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보산동을 지켜가고 있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
“주말이면 사진 촬영을 하려는 미군들로 문전성시였죠.”
63년에 문을 열었다는 동두천 보산동의 한 사진관. 손님이었던 황영수 씨가 91년도에 사진관을 인수해 현재까지 32년째 운영 중이다. 90년 대만 해도 보산동은 미군과 어깨가 부딪혀 걷기 힘들 정도로 미군들이 많았다. 핸드폰 사진이 활성화되기 전, 미군들 사이엔 고국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혹은 본국으로 돌아가며 한국생활을 추억하려고 사진을 찍는 게 유행이었다. ‘문만 열면 돈이 굴러들어왔다.’ 고 할 정도로 문전성시였다. 당시엔 획기적이라 할 수 있는 삼중 합성사진부터, 홀로그램 액자, 퍼즐 액자, 머그컵 등 추억이 될만한 아이디어 상품들을 기획하며 히트시켰던 전성기를 그의 사진관에 그대로 남아있다. 황영수 씨에게 사진관은 보산동의 역사이자 황영수 씨 자신의 명예의 전당이다. 그는 오늘도 보산동의 역사를 카메라에 담는다.
“내 삶을 지탱해준 보산동이 좋아요”
손님이 찾아올까 싶은 후미진 뒷골목에 미국 CNN에도 소개된 적 있는 페루 음식점이 숨어 있다. 동두천이 고향인 이숙자 씨와 페루사람인 그녀의 올케가 운영하는 이곳은 20년 가까이 보산동 골목을 지켜왔다. 12만 명의 SNS 팔로워를 보유한 유명 음식평론가 타드 샘플도 ‘환상적인 맛’이라 극찬한 집. 벽에 걸린 다국적 국기들과 빼곡하게 적힌 사인들에서 미군들의 특별한 애정까지 느껴진다. 생계를 위해 손이 구부러질 정도로 힘겹게 일해야 했던 시절, 지친 그녀에게 힘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보산동의 이웃이었다. 서로를 도닥이며 힘겨운 시절을 함께 이겨낸 이웃이 있어 보산동을 떠날 수 없다는 이숙자 씨. 그녀는 오늘도 따스한 마음으로 푸짐한 페루음식을 식탁에 올린다.
55년간 보산동의 밤을 지켜온 튀김집
보산동 거리에 어둠이 내리면 퇴근 후 여가를 즐기러 나온 미군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온다. 미군들의 퇴근시각에 맞춰 문을 여는 튀김집은 55년간 보산동 거리를 지켜왔다. 매일 새벽 5시까지 문을 여는데, 가게 앞은 언제나 출출한 배를 채우려는 미군들로 북적거린다.
미국발 유행을 선도했던 보산동의 장인들
보산동 중심가에 7,8개의 양복점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8,90년대까지만 해도 이 거리에 양복점에 40여 개에 달했다. 파티문화를 즐기는 미군들이 연회복을 맞추거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면 값이 저렴하고 수준 높은 양복을 몇 벌씩 맞춰가곤 했다. 미군이 떠나며 숫자가 줄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시대의 장인들이 단골손님들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윤현수, 조봉은 부부는 양복점 거리에서 만나 30년째 양복점을 운영 중이다. 한번 손님은 영원한 단골이라는 아내 조봉은 씨. 수십 년 된 단골들이 평택에서도 찾아오고 미국에서도 찾아온다.
양복점 바로 건너편에는 이사근 씨의 가죽 옷 제작 공방이 자리잡고 있다. 보산동에서 양복을 만들던 그는 일찌감치 블루오션을 찾아 가죽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미군들은 누구나 한 벌이상은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가죽옷을 좋아했다. 한 달에 수백 벌도 만들던 게 지금 10분의 1도 안될 정도로 손님이 줄었지만, 미국 손님이 사라진 대신 입소문을 들고 찾아온 한국손님들이 있어 명맥을 잇고 있다.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미국식 패션의 유행을 선도했던 보산동. 오늘도 보산동의 장인들은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나간다.
“보산동은 내 전부”
클럽을 통해 한국 록음악의 중심지로 불렸던 보산동엔 40년간 문을 열어온 악기점이 있다. 기타를 팔기 시작해 어깨너머 배운 기술로 악기 수리까지 하게 됐다는 임성순 씨. 대중 음악인들이 무대를 찾아 몰려들던 시절은 가고 없지만, 동두천이 록음악의 중심지도 조명되면서 젊은 외국의 음악인들도 찾아오고 음악동호회 활동도 활발해졌다고 한다. 악기 공장을 차릴 정도로 성공하면서 쇠락해가는 보산동을 떠나라는 유혹도 많았다. 하루에 한두 손님이 전부지만 그는 보산동을 떠날 수 없다. 그의 청춘이 있고 가족이 있는 보산동은 그의 인생이다.
공간다큐 시즌2는 탤런트 임채무 씨가 내레이터로 참여해 숨은 도시의 매력을 들려준다.
<공간다큐 만남>의 마흔일곱 번째 이야기는 12월 4일 6시 30분.
[보산동을 잊은 그대에게]편에서 만날 수 있다.
동두천 편 연락처
사보리라티노 010-8597-3730 031-859-3730
현대사진관 031-865-3334, 010-5353-3334
킴스레더 010-9361-4982
프린스 커스텀 테일러 031-862-7547
카리스뮤직 031-868-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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